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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그것이 알고싶다 - 고3 임산부 혜원이의 선택 편에 관한 답글들을 읽고

1. 어제 (5월 9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는 선생님,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 고3 임산부 혜원이의 선택  편을 방송했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고3인 남녀 학생이 아이를 가졌고, 어렵게 양가 부모에게 알려서 출산 후 결혼을 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문제는 학교였는데, 여학생은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출산 후 학업을 지속하기를 원했지만, 학교에서는 자퇴나 전학을 권유했다는 내용입니다. 휴학 후 복학은 불가능 하다는 전제이고, 징계위원회에 교칙위반 - 불건전한 이성교제, 학교 명예실추 - 으로 회부되기 전에 스스로 자퇴하는 편이 좋다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2. 이 내용에 대해서 SBS 게시판이 엄청나게 시끄러웠습니다. 혜원이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 완전히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기본적인 이슈는 다음 몇가지가 였습니다.

● 고등학생의 임신이 처벌 대상인가 아닌가.
● 임신한 학생이 학교에 출석하는 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인가 아닌가.
● 임신한 학생의 교육기회를 박탈 (퇴학) 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아닌가.
● 임신한 학생이 아이를 얻었다면, 그 대가로 학업을 포기해야 한다 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받을 권리는 인정되어야 한다.
● 미성년자인 학생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찬성과 반대측의 주장이 너무나 극과 극을 달려서 토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내용이 게시판을 덮었습니다. 그중 가관인 주장들은,

"고등학생이 임신했으면 낙태하는 것이 최선이다"
"학교 다니고 싶으면 교내에 수유실 있는 대만으로 가버려라"
"PD 딸이 중학교 다니다가 임신했나보네"
"중동 같으면 명예 살인 감이다" - 대만의 사례를 들어 학생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한 부분에 대하여

등등 이 있었습니다.

3. 위 이슈들에 대한 제 생각을 밝히면,

● 임신이 부적절한 행동이고, 교칙상 처벌대상인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부적절한 이성교제라는 부분은 양가 부모의 합의로 어느정도는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교칙위반은 분명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실체적인 피해를 주는 폭력, 절도 같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퇴학이나 자퇴의 원인이 될 만큼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한 것은 칭찬받을 만한 행동입니다. 낙태를 했다면 그 행동이 오히려 실정법 위반이니 교칙위반보다 더 큰 잘못이지요.

● 임신한 학생을 보고 친구들이 영향을 받아 미혼모가 많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친구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질 것을 걱정하신다면, 선정적인 TV / 영화와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을 먼저 고민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임신한 학생이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객관적인 근거는 젼혀 없는 이야기 입니다.

● 임신한 학생도 어디까지나 청소년이고 학생입니다. 실수는 이미 저질러졌고, 처벌 보다는 학생을 도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잘못했으니 교육기회를 박탈하겠다는 것이 학교 측에서 학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겁니다.

● 근데, 고3이 임신한 것이 정말 학교 폭력이나 원조교제와 같이 나쁜 일입니까? 정말로요? 아이를 낳는 것이 언제부터 그렇게 끔찍한 범죄가 되었습니까?

4.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참 무섭더군요. 과연 자기 딸이나 가까운 친구가 같은 일을 당해도 "그래 그런 잘못을 했으니 학교는 자퇴하렴" 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지. 일말의 동정심이나 연민의 감정도 없이, "이른 나이에 남자랑 자고 다니는 비행청소년이니 학교에서 꺼져버려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미국이나 멕시코나 대만이 미성년자의 임신을 권장해서 학교에 탁아소나 수유실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겁니다. 미혼모 이전에 학생이고, 청소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른 이들과 동등한 인권과 교육받을 권리를 보호해 주는 거지요. 한국사회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 조금만 옆길로 벗어나도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잔인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방송에 소개된 미혼모 학생들이 칭찬받을 일은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임신 중절을 선택하지 않은 일은 좋은 일이고, 아이를 갖는 순간 학생이 학생이 아닌 것이 되거나 청소년이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그런 사회가 되면 안될까요? 어떻게 혼낼까, 처벌할까를 이야기 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