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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Non IT

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탐구 - 김영수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탐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영수 (알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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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의 사기에 관해서 이미 여러권의 책을 쓰셨던 김영수 선생님께서 새로운 사기 해설서를 내놓으셨다. "난세에 답하다"는 EBS에서 "사기와 21세기" 라는 제목으로 강의 하셨던 것을 다시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이 요즘들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도자와 정치가 난세라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는 어렵고 국민은 괴로워하고 있고, 국정은 포악하여 국민을 탄압하고 여론은 국론과 거슬러 흐른다. 우군과 적군이 불분명한 국제사회 속에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작은 나라이고, 바로 옆의 형제인지 주적인지 알 수 없는 나라는 누구를 겨눈 것인지조차 불분명한 핵무기와 미사일로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 난세라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책 속에서 저자는 여러차례 언급하지만, 에필로그에서는 좀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MB정권이 들어서기 전 부터 MB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던 분이다. 그 이유가, 작가가 책 속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좌파, 우파의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역사에 비추어 좋지 않다는 비판이었던 것 같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격랑을 헤처온 수많은 인물들이 얽혀있는 "사기"열전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사기"는 고전이다. 고전은 다른 말로 바꾸면 "지식인의 교양" 이라는 뜻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이 역사가 주는 의미를, 늘쌍 써오는 사자성어의 실제 의미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흔히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간혹 틀린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로마사 속에서, 카이사르는 "시민들이여" 한마디로 군단의 발란을 제압했지만, 그 먼 후손인 한 황제는 역시 "시민들이여" 라고 했다가 자신의 군단에게 살해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 사건을 모두 알고 있으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하는냐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역사가 미래의 거울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관료들, 특히 옜날 공경 대부에 견줄만한 장관들과 청와대의 수석들이라면 자신을 사기 속의 어떤 인물에 비유하고 있을까? 또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모습을 어떤 인물에 비유하고 있을까? 사기에는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간신배와 소인배들, 그리고 포악한 관리들의 얘기도 따로 열전으로 적어두고 있다. 스스로는 자기 허벅지 살을 베었던 개자추 같은 충신이라고 자신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50년쯤 후 또 다른 사마천들은 그들을 왕의 귀와 눈을 가린 간신배에 비유할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항상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세워보는 것이 현자의 방식이다. 역사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이 삽을 든 큰 뜻을 국민들이 몰라준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수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둘이 있다. 한명은 자산, 또 한명은 제나라 위왕이다.

  정나라 자산은 법을 명확히 세워 국가의 기틀을 바로 잡았다. 개혁 초기에는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법을 엄정하고 공평하게, 그리고 청렴하게 집행하자 국가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부동산 관련 법 하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가 좋을 때, 나쁠 때 마다 조석으로 바뀌는 우리나라가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법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많고, 법을 지키기 보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돈을 벌자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희망이 없다. 뇌물을 받았어도 대가성이 없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 통하는 사회, 죄가 있으나 정치인으로, 경제인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했으니 용서해준다는 사회, 상대 변호사가 전관이니 형을 면해준다는 사회는 나라라 부를 만한 가치도 없다. 곧 망할 나라다.

  제나라 위왕은 비판을 달게 받을 줄 아는 왕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싫어하고 비판하고 잔소리 하는 것,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을 싫어한다. 누구라도 분노가 먼저 치민다. 하물며 한 나라의 왕이라면 자신에게 싫은 소리하는 신하를 멀리하고 간신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다. 그런데, 제나라 위왕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에게 직언하는 신하에게 1등상을, 글로 비판하는 사람에게 2등상을 , 길거리나 사석에서라도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3등상을 주어 "돈을 주고 직언을 산다"는 일화를 만들어낸 왕이다. 지난 대통령도, 지금 대통령도 모두 자신에게 반대하는 신문을 읽지도 않고, 싫은 소리하는 사람을 내치며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하는 생각은 "백성들이 내 큰 뜻을 몰라준다. 언젠가는 내 선견지명에 탄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진정한 대인은 돈을 주고라고 직언을 구하며 그 말을 듣고 잘못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다. 주변에 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역사를 읽고도 이런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면 맹인과 다를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라는 사마천의 말을 세겨들어야 한다. 촛불에 대항하여 산성을 쌓는 정치, 무수한 반대에도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고 대운하를 파는 정치를 우리 후손들이 뭐라고 부를까? 역사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당장에는 사관을 궁형에 처하고 부끄럼을 줄 수 있을지라도,  그 글을 3000년을 이어져 내려와 모든 백성이 당신과 당신의 후손들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물러난지 1년만에 검찰에 불려다닌다. 이건 작은 일이다. 어떤 왕들과 신하는 오늘날에도 그 어리석음과 간악함을 들어 사람들이 비웃고 있다. 이것이 진정 큰 일이고 두려워 할만한 일이다.

  근데, 정말 그분들은 이걸 알면서도 그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