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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익명성과 실명성의 중간쯤을 기대하고 쓰는 것입니다. 이 글의 저자는 제 실명이 아니라, 제 필명과 블로그 주소로 남지요. 이건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내 실체를 반영하고 있지만 내 전부는 아닙니다. 제 치부들은 교묘하게 가려져있고, 실존하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내 모습은 아주 약간, 그 중 대단히 긍정적인 모습들만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기 위하여 오는 많은 방문자들이 있고, 그들과 또 다시 실존적인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이 관계 또한, 일반적으로는, 심각한 갈등이 배제된 좋은 관계들만 남게 됩니다. 서로에게 덕담과 격려를 나누는 관계가 주된 관계죠. 악플을 달거나 뒷담을 한다면, 가볍게 삭제할 수도 있고, 관계를 거부하거나 지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블로그의 매력입니다. 아름다운 모습들, 보기좋은 관계들만 남게 되는거지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제가 블로그에 별 생각없이 적은 일기 한편이 내 익명성을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날 기분 나쁜 일이 있었고, 블로그에 이 이야기를 기술하듯이 적었습니다. 상호가 들어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부러 주소는 적지 않았습니다. 내용도 악의적 비방을 위해 적은 것은 아니었고요. 글을 남기고 사흘 쯤 지났을까.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만 보고도 글쓴이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날 사건을 내가 기분 나쁠만 했다는 것을 그쪽에서 인정한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더 놀랐습니다. 익명성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뭔가 굳게 믿고 있던 것이 깨어져 나간 기분이랄까. "미네르바"가 얼마나 끔찍한 기분이었을지 알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충격으로 멍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충격의 실질적 원인이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평생 남에게 삿되게 대해본 적이 없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않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비평과 리뷰를 적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리뷰가 아무리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해도 그 내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대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나부터도 누가 안좋은 평을 하면 대번에 표정이 변하니 말입다.

  그동안 써왔던 리뷰들과 뉴스기사에 대한 리플들을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들에 관한 리뷰에 90%가 비판이었고, 책에 관한 리뷰들도 별 하나짜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별 하나 : 시간낭비 라고 적어 놓은 책들이 꽤 있었습니다. 분명 그 책의 저자들도 자기가 쓴 책에 관해서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들을 뒤져 리뷰를 읽어볼텐데, 내가 "읽지말라"고 적어 놓은 그을 보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엊그제 전화하셨던 분처럼, 내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면 역시 나를 찾고 싶었을까?

  그렇다고 모든 리뷰들을 좋은 것들만 모아두는 것은 리뷰를 가치없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들만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서 모든 일이 좋은 일로만 가득한 블로그는 이상하지 않을까요? 어, 그러고 보니 앞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은 좋은 것들만 남겨 두고 싶다고 한 스스로의 글과 모순이 된네요. 이런... 이게 내 충격의 원인인가요? 남을 대할 때와 자기 자신에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자기모순이 드러난 것이 부끄러워서 일까요?

  당분간은 안좋은 비평에 대해서는 비평하기 보다는 "침묵" 하려 합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는 인터넷 금언을 실천해 보려 합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분간은 그렇게 해보려 합니다.

  혹시, 저랑 같으 고민을 해보셨거나, 조언을 해주실 분들은 리플을 부탁드립니다. 어제부터 계속 기분이 꽁기꽁기 하네요.